별 할 말도 없을 때

작성자:HUE
작성일:2010.02.04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헌법 11조 1항]

헌법에 저렇게 규정되어 있는데 왜 우리 주변은 불평등이 가득하고 계급화 되어 우리를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아우성으로 날을 지새우게 하는가?

이것이 내가 본 아고라 풍경이다.


<헌법에 규정?>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곳은 글을 ‘핥아 먹는다‘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사람으로서 유행어가 되어 버린 작금에 일말의 책임을 가진다.
헌법 11조 1항의 읽기는 <법 앞에>라는 문구다.
무조건 평등한 게 아니라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 빚어지는 온갖 푸념을 보며 표현한 말이다.

푸념이 타당하려면 사법 정의에 대해 논해야 한다.


<불평등과 계급화>

평등 규정 앞의 헌법 제 10조에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는 조항인데 누구나 자유로운 영리추구와 재산의 소유가 가능하다는 자본주의 경제 원칙과 관련된다. 이것은 법적. 정치적 평등은 인정하되 경제적 평등까지는 인정하지 않는 체재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는 거다. 전 근대 사회의 신분이 법적. 정치적 구분인데 비해 근대 사회의 계급은 경제적 구분이다.
우리가 정부를 선택할 때 소위 우파나 좌파적 성향을 눈여겨보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필연으로 노출시키는 경제적 계급을 강화하느냐 아니면 기회균등을 확대하느냐의 선택인 것이다.

여기에서 경제 정의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를 보고 싶었지만 미네르바 굿판으로 미망에 빠진 형국을 지켜본 것 말고는....


<세상의 가장자리>

한 때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어 진 기억 때문인지 회상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조명은 관심사를 따라 때로는 필요에 의해 시공을 옮겨 다닌다. 떨쳐버리지 못하는 불의 기억은 조그만 쥐불놀이조차에도 환호하는 무리들로 더욱 을씨년스럽다.
한 번 곡식을 거둔 땅은 황무지가 되어야 한다. 황야는 버려진 땅이 아니라 미래의 땅이다. 황야는 안으로는 힘을 비축한다.
봄이 온다. 씨를 뿌리기 전에 전복해야 한다. 깊게 갈아엎어야 한다. 이곳에서 <알밥>의 역할은 쟁기가 되어 황무지의 속살을 드러내 준 다음에는 창고로 돌아가는 것이다.

알밥을 삯꾼으로 보는... 인생을 터무니없는 의심 말고는 별로 한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사계절 내내 키보드를 헤매는 것도 팔자이긴 하다.


<아우성으로 지새우는 날들>

데이비드 리즈먼이 1950년대 [고독한 군중]에서 이미 현대 사회는 ‘타인 지향성’이라는 특성을 가질 것이라고 이야기 한 바 있다.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 정작 그 해결을 위한 ‘참고자료’는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밖에 없다. 어떻게든 개성과 정체성을 확보해야 하지만 내게 개성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타인들이다.


아고라에서 조회수와 찬반에 연연하는 모습들을 보며 다시 떠오른 상념이다.
연대는 개인이 조직에 대항하는 대단히 적극적이고 유효한 방식이다. 그런데 연대하는 것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보이는 행태가 자주 목격된다.

***

이 글은 <개념어 사전/남경태 지음>일부분을 토대로 하여 썼다.


written by 'HUE'
(이 글의 저작권은 'HUE'님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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