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 불현듯 생각나는 사람

작성일:2010.02.02


"나는 글 쓰는 일이 항상 두렵다. 이유는 아무리 사이버 공간이라 해도 현실과 곧바로 이어질 때 동일하게 책임져야 한다는 자각 때문이고, 내가 쓰는 내용이 결국은 내가 세상을 인식하는 모습에 다름 아니여서 초라함이 앞서고, 아무리 객관성을 노력해도 갖게 되는 태생적 한계로서 <나>라는 개별성 때문이다."

윗글은 얼마 전 'HUE'님이 쓴 글 중 말미의 한 부분이다. 나도 그렇다. 진지모드로 글 쓸 때는 더욱 그렇다. 내 지난 글들이야 그저 농조의 가소롭고 가벼운 글들이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지만 정색을 하고 게시판에 글을 토하는 일은 두려움부터 앞서는 건 사실이다.

공개게시판을 지켜보는 눈은 단지 게시판 상용자 몇 사람의 눈이 아니라 네이버 지식in이나 위키피디아의 눈과 다름없다. 게시판에 제공되는 지식과 정보에 대한 검색은 제공하는 자뿐만 아니라 제공받는 자들도 실시간으로 공유 가능한 세상이다.

어설프게 공부한 지식 몇 쪼가리를 나열해놓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쭐해하는 일이란 참으로 낯간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글쓰기에 무슨 모법답안이 있는 건 아니지만 세간에서 지자들 간에 통용되는 좋은 글쓰기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경방에서 사단을 일으키는 자들의 글쓰기는 결코 바람직한 모범은 아니었다. 좋은 글을 가늠하는 저마다의 기준들이 있을 테지만 내 기준에서의 좋은 글이란 '단순히 지식 전달의 글이 아닌 자신의 사유의 결과물들을 자신이 조탁한 언어로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잘 명증해낸 글'이 아닐까 싶다.

기존지식이나 지식인들에 '정통한' 것이 아니라면 함부로 인용하는 건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그 지식 분야에 정통한 누군가의 눈이 두려운 대목이다. 분명한 건 흔히 현학적인 글쓰기에서 인용되는 선대의 유명인들은 정작 그들의 글에서는 비판의 근거로써 타자나 타자의 기존지식을 인용할 때를 제외하고는 인용이 흔치 않았으며 오직 자신의 사유의 결과물들을 논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창조자들이었다. 그처럼 자신들만의 사유의 결과물들이 있었기에 모두 지식 스승의 반열에 올랐나 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다. '죶밥'이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아구라 경방에서 이런 글쓰기에 가장 충실했던 사람으로 죶밥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겟다. 난 그가 자신의 글에서 유명인의 지식을 쓸데없이 인용하거나 남발하는 걸 보지 못했다. 그는 철저히 자신만의 사유의 결과물들만을 글속에 표현했다. 정확한 어법과 탄탄한 논리구조는 그의 사유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니편 내편 없이 그의 까칠한 어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걸 안다. 난 그가 그런 까칠한 어투를 채택한 것이 경방 논쟁의 특수성에 맞춘 인위적 장치란 걸 알기에 애써 그를 나무랄 생각은 없다. 닭 잡는데 보도를 휘두를 필요까지야...

진중권의 까칠한 어투에는 환호하면서 죶밥의 까칠한 어투에는 지나치게 인색했던 경방의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죶밥과 진지모드에서의 토론에 응하거나 제안하는 것을 보지 못했기에 죶밥이 숨기고 있는 보도를 볼 기회가 없었다. 글타고 내가 죶밥을 건드려서 그의 보도를 굳이 꺼내 보일 이유도 자신도 없다. 언젠가 좋은 장소에서 그가 휘두르는 보도에서 그의 깊이있는 사유의 결과물들을 보길 기대해볼 뿐이다.

이 아침 불현듯 죶밥이 생각나서 써보는 잡글이다.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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