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수'에서 '나가슈'라는데 '안 나가서' 이 난리


‘나가수’인지 ‘나가슈’인지 며칠 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TV라곤 박지성 축구나 추신수 야구 보는 게 다인 나로선 그 내막을 알 길 없었다. 며칠 연이은 기사에 호기심이 발동해서 결국 티비 디비 봤다. SBS인지 MBC인지 쿡TV ‘프로그램 다시보기’ 하느라 여기저기 헤매면서 새삼 이게 뭔 호기심이고 싶었다. 대체 '나가수'가 뭐길래.



보니까 문제는 이거였다. '나 가수인데 나가슈라니 이럴 순 없어! 난 대한민국에서 젤 잘 나가는 국민가수란 말야! 분별력이 부족했거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과도했던 한 선배 가수가 후배들이 '돌아와 그대'를 외친다고 돌아와 버린 게 화근이었다.

넘치는 친절은 외국인들이 한국사회를 이해하는데서 많이 어려워하는 부분이다. 먹기 싫다는데도 굳이 더 먹으라거나 늦은 시각 귀가를 서두르는 손님에게 자고 가라고도 한다. 맘 따로 입 따로의 이런 언행들을 한국인들은 특유의 '정'(情)과 '예'(禮)로 생각한다. 이런 언행에 직면해서 줄타기라도 하듯 순간 판단이 흐려질 경우 결례를 범할 수도 있다. 자고 가란다고 진짜 옷매무새 풀어 헤치는 경우가 그렇다. 김건모가 그랬다.

나가수 출연진의 이런 철부지 같은 언행은 평가단, 더 나아가서는 시청자들에 대한 부정이자 도발이고 결례였다. 경기에 패한 축구 선수들이 지켜보는 관중들을 도외시한 채 그라운드에서 뻗대며 축구협회에 재경기를 요청하는 것과 같은 아주 볼썽 사나운 꼴이었다. 아무런 이유도 명분도 없이!

경연에 참가한 가수들은 저마다 자신의 노래 영역에서 가히 일가를 이룬 명가수들이다. 각자의 노래색이 다르고 추구하는 음악의 분야마저 제각각인데 그들 사이에서 ‘최고와 최악’이나 ‘일등과 꼴등’을 가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프로그램 기획자의 의도 또한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시청자들은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아는데 정작에 본인들만은 슈스타K 대회라도 나온 듯 딴맘들을 먹었었나 보다.


그렇게 부정하고 싶은 꼴등이 누군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단 걸 알면서 프로그램엔 왜 참여했단 말인가. 목구녕이 포도청이라서? 그건 아닐 터 ‘설마 내가’라는 요행 심리가 작용했겠지. 겉으론 선배 후배 찾으면서도 속으론 ‘내가 최고’라는 ‘올’스타 의식에 쪄들었던 건지도 모른다. 특히 김건모는. 본인이야 패인(?)을 립스틱에서 찾더라만 정작 립스틱 덕에 일등을 했더라면 립스틱이 아니라 제 노래 잘한 때문이라며 자부했겠지. 익히 보던 그거 또 보였다. 잘 되면 제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썩어빠진 남탓병!

참, 비릿하더라. 꼴등(?)한 건담형에게 동생들이 가식적으로 날려주는 ‘대인배’ 드립도 비릿하고, 재도전을 받아들이는 어색한 몰염치를 가리기 위해 동원된 욱끼지도 않는 반전의 개그도 비릿하고. 후배들의 억지스런 예의를 못이기는 척 은근슬쩍 받아들이는 그 속 보이는 유치함이라니 3류 신파극이 따로 없었다. 이 사회의 ‘체’짜들(특히 정치인들)에게서 아주 못된 것만 배웠어요. 프로그램 다시보기를 하는 내내 손발이 오그라드는 불쾌감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오죽했으면 네티즌들이 그 난리를 쳤는지 충분히 공감이 가고도 남는다. 시청자들을 등신 취급하는 진짜 등신들의 땡깡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녔다.

(가수 개인에 대한 호불호의 별다른 선입견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면서) ‘나가수’란 프로그램만을 놓고 볼 때 김건모가 보여준 모습은 한마디로 ‘찌질이’였다. 김건모 뿐만 아니라 김제동, 이소라 등 모두가 딱 찌질이의 그 모습이었다. 찌질이들의 가장 나쁜 결점이 쿨하지 못하다는 건데 아니나 다를까 사후 수습 또한 찌질스럽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MBC는 사안의 심각성을 깨달았음인지 신속하고 쿨하게 제작진을 전격 교체하는 용단을 내렸으나 정작에 실수를 범한 당사자들은 여기저기서 찌질대기에 바쁜 모양새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1032320475629180&linkid=63&newssetid=487&nav=1

걍 잘못했습니다. 저희들이 실수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랑과 관심으로 지켜봐 주십시오. 이와 같이 간결하고 쿨하게 매조지하면 시청자들로부터 반전의 사랑과 관심이 재폭발할지도 모를 일이건만 뭐가 문제인지 시청자들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쳐줘도 아둔한 머리들이 못 알아 쳐먹고 사람만 무섭다고 그런다. 바로 그 사람들이 저들을 그간 얼마나 사랑해준지도 모르고서, 쯧!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2.htm?articleid=2011032407351654294&linkid=616&newssetid=3727&title=%B9%E6%BC%DB+%C0%CC%B8%F0%C0%FA%B8%F0

다시 ‘원칙과 유연성’의 문제다. 원칙과 유연성은 사회라는 수레를 굴려가는 양 바퀴다. 어느 쪽 바퀴든 펑크가 나면 수레는 삐거덕거리고 전진이 힘들다. 원칙만 강조하면 너무 딱딱해서 인정이 메마르고 원칙이 무시된 유연성만 강조하면 너무 말랑거려서 질서가 무너진다. 둘 간의 조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적당히 뒤섞는 주먹구구식 조화가 아니라 같은 사안일지라도 때와 장소와 조건에 따라 때론 원칙에 때론 유연성에 방점을 둠으로써 한 사회의 근간이 되는 인정과 질서를 균형있게 안정시키는 것이다.

나가수에서 ‘재도전’이란 유연성은 시청자 평가단이란 질서를 파괴하는 과도한 인정(人情)이었고 발휘되어서는 안 될 그야말로 출연자들의 땡깡에 밀린 꼼수일 뿐였다. 공적 평가단 없이 제작진이 임시로 정한 룰에 따른 겨루기였다면 재도전 아니라 재재도전을 하더라도 당신들이 그토록 좋아하는(시청자들도 좋아하는) ‘재미와 감동’을 위해 용인될 수도 있었다. 근데 '나가수'는 프로그램 소개 단계에서부터 그토록 강조한 ‘엄선된’ 시청자 평가단이라는 나름의 ‘공정한’ 기준과 조건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평가와 결과를 맡기는 권위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유도 명분도 없는 유연성을 제안한 출연자나 그에 동조한 출연자들, 그것을 받아들인 기획진 모두는 평가단의 평가와 권위를 부정하는 우를 범했고 결과적으로 모든 시청자들을 우롱한 셈이 되었다.


늘 카메라를 달고 살다보니 카메라 앞에서도 사적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낼 만큼 촬영이 일상 같고 시청자들 또한 가족들 같아서 별 생각없이 가볍고 편하게 취한 처신일 뿐인데 가혹하다 싶을 만큼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비판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겠다. 출연자들 모두 울고불고 통곡하고 싶을 만큼 큰 패닉 상태에 빠졌을 수도 있겠다. 글터래도 지금은 혼쭐난 정신들 시급히 챙길 때다. 더 이상 찌질대는 모습들은 보이지 말고 쿨하게 처신하라. 조선 사람들은 사과하는 일에 너무도 인색하고 어색해한다. 그게 무에 대수라고. 살다보면 욕도 먹고 욕도 하며 그렇게 어울렁더울렁 살아가는 게지.

대중들에게 얼굴을 파는 자리가 그래서 힘든 거다. 아픈 만큼 더욱 성숙해졌기를 빈다. 김영희 PD는 첨 봤는데 눈빛이 진중하고 신뢰가 가는 얼굴이더만 한순간의 오판으로 내상이 크지 않길 바라고 본업에서 한층 진일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후~, 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다.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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