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도덕,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이제 그만!...???


프레시안에서 포스팅한 <진보=도덕,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이제 그만!>이라는 제하의 글을 보았다. 정희준 동아대 교수의 글이다.

곽노현 논란의 재구성->왜 보수의 십자가를 진보가->스스로 도덕성 프레임에 갇혀버린 진보->촌스런 진보는 가라 와 같은 소제목의 순차대로 그의 생각에 대한 이견을 빨간 글자들에 담아 보았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1090507582072926&linkid=20&newssetid=455&from=r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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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논란의 재구성

최근 진행되는 '곽노현 논쟁'을 들여다보면 크게 두 가지를 놓고 싸움들을 한다. 하나는 사퇴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선의'냐 '대가'냐의 문제이다. 후자는 보수 대 진보의 대결 구도가 확연한데 전자는 재밌게도 진보 내에서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사퇴와 관련해서 개인적 의견을 말하자면 곽노현은 지금 사퇴할 이유가 없다. 본인이 강하게 부정하기도 하지만 검찰의 대가성 입증도 그리 쉽지는 않아 보인다. 게다가 전 서울시장 오세훈이 사퇴하는 날 사건이 터졌다는 귀신 곡할 타이밍도 그렇고, 또 검찰이 미확인 정보를 계속 '흘리기' 하고 '청부 언론'이 이를 받아쓰기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나는 이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진보의 오래된 문제일 뿐 아니라 지금의 혼란 역시 이것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곽노현이 박명기에게 2억 원을 줬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진보 진영에서 나온 이야기는 '당장 사퇴'였는데 그 이유는 바로 '도덕성'이었다.

진중권은 "도덕성이 유일한 무기인 진보 진영이 이를 내다버리고 싸울 수 없다"면서 "도덕성에 커다란 흠집"이 갔기 때문에 "법적 책임에 앞서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 홍인기 역시 "도덕성을 바탕으로 하는 진보 진영에는 이번 사건이 족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사퇴를 주장하진 않았지만 조국도 "진보 진영 전체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를 것이라 난감"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도덕성이 정말 진보 진영의 유일한 무기인가? 진보는 정말 도덕성에 바탕하고 있는가? 아니, 어쩌다 도덕성이 진보의 족쇄가 됐는가?

법과 도덕의 경계는 인간이 그어놓은 사회적 합의의 산물로서 지역과 문화, 또는 상황에 따라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문명국가에서의 살인은 중죄이지만 식인부족에게 살인은 장려행위가 될 수 있고 평상시의 살인과 전시에서의 살인의 구분도 그렇다.

얼마 전 미국에서 한국계 배우 손형민이 강도강간죄로 종신형을 선고받는 걸 보면서 우리는 조두순에게 내려진 12년 선고를 떠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려야 했다. 인터넷의 발달로 세상의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우리는 나라와 문화에 따라 천차만별인 법과 도덕의 경계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법과 도덕의 경계에서 가치 경중의 판단을 내려야 하는 혼란스러운 순간이 닥쳤을 때 우선해야 할 것은 법보다는 도덕이다. 도덕을 강제한 것이 곧 법이고 지역과 문화에 따라 그 강제의 정도, 강제의 범위에 차등이 있을 뿐 도덕은 인류보편의 가치다. 나치의 법은 유대인 말살을 허용했으나 인류보편의 도덕으로 보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은 일급 살인이었다.

도덕이 진보의 유일한 무기는 아니지만 주무기임엔 분명하다. 도덕은 진보뿐만 아니라 인류 공존을 위해 온 인류가 추구해야할 보편의 가치다. 도덕제일론자로서의 얘기가 아니라 인간주의자로서의 얘기다. ‘인간’의 개념을 빼놓은 진보는 진보일 수 없고 ‘도덕’의 개념을 빼놓은 인간은 인간일 수 없다. 도덕과 인간과 진보는 삼위일체를 지향한다. 자본의 반도덕성, 반인간성에 저항하여 발로한 것이 진보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굳이 강조치 않더라도 인간과 도덕은 진보의 양수레바퀴임을 부인해서는 곤란하다.

곽노현 논란은 재구성할 필요도 없는 진보적 가치에 위배되는 부도덕한 사안으로 곽감은 당연히 진보 교육감이란 계급장을 떼고 백의종군함이 마땅하다. 곽 교육감이 "도덕적으로 문제될 수 있지만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며 "조사에 당당히 임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해진다. 실로 어이없는 저항이다. 통장에 27만원 밖에 없으니 법대로 하라는 전두환의 큰소리가 오버랩 되는 대목이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linkid=33&articleid=2011090418140821180&newssetid=16


왜 보수의 십자가를 진보가

도덕성은 원래 보수의 덕목이다. 도덕이란 당연히 기존 가치들의 결집이고 보수의 이데올로기이다. 가진 자일수록, '사회 안정'을 추구할수록, 모범을 보이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진보는 도덕적일 수 없다. 진보가 무엇인가. 변화다. 기존의 사고와 행동의 틀에서 자유로워야할 뿐 아니라 도전하고 저항하기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도덕적일 수 있겠는가. '진보=도덕성'이라는 공식은 한마디로 논리 모순이다.

그렇다면, 어쩌다 도덕성이 '진보의 무기'가 되었나. 군사 독재가 이어지고 정경유착이 뿌리내리면서 우리의 보수는 부패했다. 사실 한국의 보수는 스스로 부패(또는 부정)했거나 부패를 옹호하거나 부패와 친한 사람들이다. 돈도 많은 사람들이다. 박정희 시대의 실력자 이후락은 자신의 부정한 축재를 "떡을 만지다 보면 손에 떡고물이 묻게 마련"이라며 합리화하기도 했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부패는 자연스런 조합이 되었다.

그런데 공룡과도 같은 보수와 맞서기 위해 정치에 뛰어든 진보는 내세울 게 없었다. 급한 대로 집어든 게 도덕성이었다. 사실 진보엔 가난한 이들이 많았고 따라서 도덕성에선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진보와 도덕성의 조합은 부패한 보수의 아픈 곳 찌르기에는 매우 편리하면서도 탁월한 무기였다.

이 분은 도덕이라 하면 공자와 맹자, 충효예를 먼저 떠올리는 모양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지배계층이 피지배계층을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도덕이 이데올로기화 된 측면이 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는다. 진보가 지향하는 도덕은 그런 기능화(이데올로기화)된 도덕이 아니라 위에서도 언급했듯 인류의 공존과 번영을 위한 보편적 가치로서의 덕목들을 말한다. 거짓말 하지 말라 강간하지 말라, 절도나 강도하지 말라, 폭력을 행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이와 같은 인류의 안녕과 질서를 지켜나가는 보편적 가치들이다.

역사적으로 보수는 늘 부도덕했고 진보는 가진 게 없어 도덕이라는 지푸라기를 잡은 게 아니라 보수들의 가장 약한 고리가 부도덕이었기에 보수의 도덕적 부패성을 공격해온 것이다. 부도덕은 보수의 심장에 깔린 지뢰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고 ‘진보와 도덕성의 조합은 부패한 보수의 아픈 곳 찌르기에는 매우 편리하면서도 탁월한 무기였다.’라는 정교수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진보가 추구해온 변화는 도덕의 파괴가 아닌 체제의 파괴다. 여기서 말하는 체제는 정치, 경제, 문화적 질서를 의미한다. 진보의 급진적 파괴 형식이었던 혁명은 구사회주의 체제의 몰락과 함께 이미 그 정당성을 상실했기에 진보의 체제에 대한 파괴 형식은 보다 온건하고 민주적인 절차와 방식으로 탈바꿈 되었고 그런 민주적 절차와 방식의 실천 과정에서 도덕성의 중요성은 백번 천번을 언급해도 지나치지 않다. 과정에서 발생한 도덕성의 문제는 그 어떤 결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무상급식이 금전뒷거래를 결코 정당화할 순 없는 것이다. 진보 교육감 딱 한 번만 하고 말 게 아니라면. 도덕이라는 십자가는 짐이 아니라 부활의 상징이란 걸 명심하라.



스스로 도덕성 프레임에 갇혀버린 진보

그러다 보니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제까지 선거는 독재 대 반독재나 민주 대 비민주의 대립 구도를 보였는데 사실 그 바닥에 깔린 프레임은 바로 부패 대 반부패였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아온 정운찬이나 손석희 같은 깨끗한 이미지의 인물들은 본인들의 정치 성향과는 상관없이 무조건 진보 진영의 주자가 될 것이라고 사람들은 믿게 되었다. 작금의 '안철수 현상'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봐도 보수적 인물인데 (보수의 간판 이데올로그 윤여준이 돕고 있다.) 정작 그가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면 보수뿐만 아니라 진보의 표를 가져간다지 않는가.

문제는 진보가 계속 도덕성을 표방하다 보니 스스로의 도덕성을 계속 증명해야 하고 또 사소한 도덕성 시비에도 매우 취약한 구조에 놓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 출범 후 한나라당과 불법 대선 자금 규모를 가지고 시비를 벌일 때도 "한나라당 불법 선거 자금의 10분의 1을 넘지 않는다"고 주장하자 한나라당과 10분의 1을 넘는다, 아니다를 가지고 치졸하게 돈 계산까지 하며 싸우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진보는 도덕성일랑 보수에게 던져버려라. 진보라고 해서 '도덕 DNA'가 더 많은 것도 아니고 또 사람 상대하고 조직을 꾸리게 되면 한 점 부끄럼이 없기란 불가능하다. '도덕성 프레임'에 스스로 갇히는 진보를 보며 보수는 웃는다.

그들을 보라. 돈도 많은데다 룸살롱에서 '자연산'과 함께 멋지게 술 마시고 혹 실수를 해도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하며 당당하게 빠져 나가지 않는가. '부패도 능력'이라는 사람까지 있다. 특히 진보가 도덕성을 내세우면 내세울수록 보수는 부패해도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만 뿌려대는 꼴이다. 왜 보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낑낑대는가.

적정한 수준으로 민주화가 달성된 사회에서는 이제 더 이상 민주 대 반민주, 독재 대 반독재와 같은 선거 구도가 잡힐 리 없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정교수가 뚫어보듯 기존의 그런 선거 구도의 밑바닥에는 부패 대 반부패의 정서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허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하에서도 각종 권력형 부패 사건을 경험하면서 더 이상 국민들은 진보는 도덕 - 보수는 부패라는 이분법적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고 마침내 그런 정서는 전과14범을 대통령으로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해서 국민들의 도덕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거나 부패에 대한 경계심이 사라진 것이 아님은 최근의 곽노현 사건이나 안철수 신드롬을 통해서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대중들은 여전히 이념과 정책 못지않게 도덕성에 주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념에 집착하는 양 극단 투표층 60%(보수30%+진보30%)를 제외하고 선거 판도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중도의 40%층을 공략하는 최대의 무기는 능력과 도덕성, 참신성이다.

정교수가 지적하듯 안철수나 윤여준 등은 결코 진보적일 수 없는 보수적 인사들이다. 그런 그들이 진보의 표를 잠식하고 있다는 일각의 분석은 잘못이고 정확히 말하면 진보나 보수에 제각기 호의적이던 중도층의 이탈로 설명하는 게 옳다. 그러기에 안철수 신드롬은 ‘재미있는 현상’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보수에도 실망하고 진보에도 실망한 중도 40%층의 사람 보는 기준은 앞서도 말했듯 능력과 도덕성, 참신성이다. 이 모든 요건을 채우고 있는 게 안철수이고 안철수야말로 ‘부패한 진보보다 깨끗한 보수가 낫다’라는 대중들의 소망에 최적의 인물임은 쉽게 부인하기 힘들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10905121750934f6&linkid=20&newssetid=455&from=rank

이념과 정책은 양 극단의 사람들의 관심사이지 선거 결과를 좌우하는 중도층 사람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진보가 도덕을 주무기로 선택하는 것은 보수의 잔꾀도 아니고 진보의 자충수도 아닌 대중들이 요구하는 절대 덕목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간과하고 그까짓 ‘도덕성일랑 보수에게 던져버려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장해제하고 전쟁에 나서자는 말과 다름없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진보가 보수의 십자가를 지고 낑낑대는 것은 궁극적으로 부활의 영광을 알리려 함이다.



촌스런 진보는 가라

진보는 능력으로 승부해라. 능력 있지 않나. 지금 보수의 실력자나 이데올로그들은 대부분 진보에서 훈련받은 사람들 아닌가. (그 반대의 경우는 없다.) 진보적 시민 단체의 젊은 활동가들은 웬만한 교수보다도 훌륭하지 않은가. 정책 만들기도 바빠 죽겠는데 왜 '도덕성을 지키기 위한 치열한 노력'까지 해야 하나.

특히 '도덕성 타령'은 진보의 확장에 방해가 될 뿐이다. 특기(?)가 고작 도덕성이라는 진보에 요즘 젊은이들이 관심을 갖겠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다. 안철수, 손석희, 김제동, 박경철 모두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이겐 성공한 사람이 곧 떳떳한 사람인 것이다.

이제 '도덕성이 유일한 무기'인 진보와는 안녕을 고해야 한다. 성공한 진보, 부자 진보가 나와야 하고 전문인 진보가 많아져야 한다. '식스팩복근' 진보도 나와야 하고 '까도녀' 진보, '섹시한' 진보도 나와야 한다. 노동자가 부자가 되는 세상도 어서 와야 한다.

강남 좌파를 까칠하게 보는 진보, 유일한 무기가 도덕성이라는 진보. 나는 그런 진보 안 하련다.

진보가 촌스러운 건 맞다. 글타고 자학할 필요는 없다. 여당의 대표조차 ‘탤런트 정치인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하는 마당에 진보가 촌스러운 걸 부끄러워하진 말자. 정교수가 진보가 지녀야 할 비장의 무기로서 ‘능력’을 추천한 거에는 이의가 없다. 다만 ‘도덕성 대신 능력’이 아니라 ‘도덕성과 더불어 능력’이어야 한다. 진보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능력의 탑재가 아니라 구멍난 도덕성의 회복이 우선이다. 곽노현 사건을 허투루 볼 수 없는 이유다.

‘도덕성 타령’이 진보의 확장에 방해가 된다는 소리는 태양이 지구를 돈다는 소리만큼이나 허황되고 엉뚱한 선언이다. 안철수를 보수적이다라고 지적하면서 그의 능력을 손꼽아 칭송하며 진보의 대안으로 예시하는 것도 생뚱맞고 ‘성공한 사람이 곧 떳떳한 사람’이란 말은 내 그간 진보를 자처하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들어보지 못했던 망언이다. 하기사 그런 생각이 기저에 깔렸으니 곽노현을 감싸고 돌겠지만.

성공한 진보, 부자 진보, 전문가 진보, 까도녀 진보, 섹시한 진보, 식스팩복근 진보를 진보의 새로운 모델로 추천하느니 차라리 깨끗한 보수가 될 것을 권고한다면 한층 더 솔직해 보이겠다. 촌년이 공장생활로 고시 뒷바라지 해놓으니 까도녀에게 눈 돌릴 진보라면 굳이 정교수가 안녕을 고하지 않더라도 이쪽에서 먼저 안녕을 고할 일이다.

사실, 정교수의 주장이 평소 내 지론과 다를 바 없는데 반감이 앞서는 걸 보면 내 지론은 그저 남에게 나의 촌티를 위장키 위한 술수였나 보다.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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