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유산


엄마의 유산
글쓴이:허허


생강은 지상부(地上部)가 비비추처럼 생겨서 관상용으로도 그만인 식물이다.

화초도 아닌 생강을 칠천 원이나 들여 심었다고 형은 핀잔을 주었지만 엄마였다면 좋아하셨으리라.
엄마는 생전에 사람은 죽으면 그걸로 끝이지 영혼은 없다하셨고, 나 또한 같은 생각이다.
지금도 영혼의 존재여부에 대한 내 인식은 변화가 없지만, 엄마를 생각하면 영혼이라는 것이 실재하여 볼 수 없다 하더라도 느낄 수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십 수 년 전,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부산에 있는 동의의료원에 5년 가까이 계셨다.
이젠 재발 위험도 없고 물리치료도 한계가 있으니, 환경 좋은 곳에서 여생을 마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는 담당의의 권유를 받아들여, 수소문 끝에 가덕도에 있는 집을 구했다.
그곳을 생각하면, 집 앞으로 펼쳐진 일흔 평 남짓한 마당부터 떠오른다.
남쪽 끝은 언덕이라 담벼락이 없는 까닭에, 고개를 들지 않아도 가덕도와 거제도 사이의 하늘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왔다.
젊을 때 결핵을 앓았던 아버지를 위해서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엄마로서는 생의 대부분을 살았던 본가를 버리고, 외딴섬으로 유배 온 기분이 아니었을까.
가덕도에서의 적응을 위해서였을까.
엄마는 마당의 절반 너머를 화단으로 바꾼 후, 자식 키우듯 화초에 애정을 쏟았다.
화단을 조성할 때, 남쪽은 키가 작은 식물을, 북쪽은 키가 큰 나무를 심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야 키가 작은 식물도 해가림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화초들에겐 적절한 환경이 되지만, 화단과 집의 배치 때문에, 미관상 가치는 떨어진다.
화단의 입구 쪽에 키 큰 화초가 배치되어서 울타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언어장애가 있던 아버지는 몸짓과 표정으로 불만을 표했지만 엄마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동물이던 식물이던, 사람의 입장이 아닌 그 대상의 입장에서 최선이어야 한다는 것이 엄마의 생각이었으므로.
결국 엄마의 가치관을 아버지가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부부간에는 욕을 하면서도 닮는다는 말이 있다.
오랜 기간을 함께 살다보면 서서히 동화되어서, 내 정서로 못 받아들일 배우자의 인격적인 결함조차도 닮아간다는 뜻일 게다.
지금이야 달라졌지만, 유달리 부권(父權)이 강했던 우리 풍조를 감안하면 자녀들의 식성도 아버지 쪽을 닮게 된다.
식성이 서로 일치하지 않으면 엄마 쪽에서 포기하기 때문이다.
음식 맛의 핵심은 간(염도)이다.
그 간의 기준은 동일하지 않다.
싱겁게 먹는 이 에게는 짠 것이 고역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희한하게도 엄마와 아버지는 사십여 년을 함께 살면서도 간에 대한 식성에는 일치점을 찾지 못했다.
아버지의 신경질적인 목소리…….
"짭다. 이십 년째 같은 소리다" …….
"짭다. 삼십 년째 같은 소리다"…….
그러나 엄마의 대꾸도 한결 같았다.
"암만 그래도 나는 싱거우면 앵꼬바서 못 묵는다." 였다.

올 명절에 부모님의 차례음식을 장만하면서, 언제던가 아버지의 생신이던 날, 엄마가 간을 맞춘 미역국을 두고, 형수가 느끼기엔 짠 것 같아서 밥상을 들고 가면서도 내심 걱정을 하였는데, 엄마는 싱거울 것 같다면서 거기다 간장 종지를 더 얹더라는 추억담을 꺼내서 모두가 웃고 말았다.

사십 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나와 가장 격의 없이 가까웠고, 가장 고마웠던 엄마가 돌아가셨는데도 나는 엄마를 묻고, 49재가 끝날 때 까지도 울지 않았다.
나를 제외한 남매들은 엄마의 사진만 보면 오열하는데, 나는 "내 엄마가 참 곱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렇다고 엄마에 대한 정이 없는 것도, 추억이 적은 것도 아니다.
내가 살아온 궤적에서 엄마를 빼고는 말할 게 아무것도 없을 정도다.
모르긴 해도 엄마가 당신 사후에 가장 슬퍼할 자식을 꼽는다면 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슬프지 않은 내 감정이 싫었다.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기간을 정하지 않고, 엄마가 살았던 집에서 머물렀다.
그러길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엄마가 보이기 시작했다.
환영이나 환청이 아니라 모든 일상에서였다.
마당을 쓸 때도, 청소를 할 때도, 설거지를 하거나 빨래를 할 때도, 풀을 벨 때도, 자잘한 일상에서도, 어느 하나 그려지지 않는 모습이 없고 들리지 않는 음성이 없었다.
감광지에 인화된 필름으로, 영화가 과거의 영상을 복원하듯이, 엄마는 땅으로 돌아갔지만 나의 추억이란 필름에 저장된 실체로, 엄마의 영상은 언제나 복원된다.
진득한 그리움을 담고서…….

나는 엄마에게서 몸을 받았고, 엄마의 영적 영향을 받고 자랐으며 심성, 성품, 가치관등 내가 바로 엄마의 유산이라고 생각하면서, 너무 고마웠던 인연…….

엄마를 가슴에 담는다.

written by ===허허===
(이 글의 저작권은 '허허'님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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