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花樣年華)

화양연화(花樣年華)
글쓴이:허허



오래 전 인터넷 서핑 중 발견한 글인데 한 번 올려볼까 합니다. 지금은 없어진 사이트이고, 이 글을 올린 분이 지금도 그때의 닉으로 활동하는지, 그 사이트가 없어지면서 인터넷을 떠났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닉은 밝히지 않고 그냥 올립니다. 비록 아마추어가 올린 글이지만 그 글을 읽을 때의 감동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아서 고이 간직하고 있는 글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뜻을 가진 “화양연화” (花樣年華),

저는 화양연화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마다 인디언 썸머라는 말이 동시에 떠오르곤 합니다. 여름이 다 지난 후, 추워지기 전에 사막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한여름보다 더 기온이 높아지는 시기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인생의 가장 화려한 한 때를 뜻하기도 한다지요. 열풍이 부는 사막의 삭막한 이미지와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한 때의 이미지가 모양새 있게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화려함 속에서의 삭막함은 연결이 되기도 합니다.

작가는 화양연화라는 영화를 몇 번이나 보고나서 이 글을 썼던 모양입니다. 장만옥과 양조위의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보면서 작가는 그 사랑이 이루어진 이후의 상상을 했고, 그래서 첫 연이 아이를 지우러 간다고 시작하는 듯합니다. 지우러 가는 아이를 두고 습지에 부양된 창백한 식물이라는 표현도 멋들어지고, 장만옥이 매일 국수를 사러가던 묘할 정도의 외로움이 배어나던 장면이 오버랩 되기도 합니다.

차를 타고 가면서 뱃속의 아이와의 대화, 죄책감 그런 부분이 아주 간결하면서 담백하게 표현되어 있는 면면이 저는 다 좋기만 합니다. 어쩌면 작가는 아이를 지우러 간다는 표현 속에 아이가 아닌 타오르는 열정을 지우러 간다는 이미지를 남겨놓은 지도 모릅니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게시판에서 지친 분들, 오늘은 열정에 몸을 태우는 시를 감상하시면서 조금 심신을 이완시켜보는 것도 괜찮으리라 생각합니다.



화양연화 (花樣年華)


오늘은
맘먹고
매지게 맘먹고
아이 하나 지우러 간다

내 안에 습지
어둠에 부양된
너는 창백한 식물

뿌리 없는 이름인들
지난 밤 어찌 아무 예감 없었을까
쭐레쭐레 공범의 반역에 동행하는
생가슴 도리는 천연덕스런 행보야
이젠 온전히 내 몫이다

눈치만 파리하게 자란 더벅머리
데려 온 천더기처럼 나 혼자일 때만
내안에서 가만가만 말 걸어오는 아이
우리는 오늘 처음이 마지막인 세상 나들이를 한다
다정한 오누이처럼 우린 함께 창밖을 본다
초록은 언제부터 저리도 다채로워
명랑한 음표들 수 천 수 만
빛의 낱낱으로
뎅-뎅- 청량감 넘치는 종소리 보내온다
끔찍이도 환한 세상의 뒷골목에서
숨죽인 어둠의 밑바닥에서 우리는 얼마나 가엽게 퇴색되었나
보란 듯 만화(滿花)의 들판
어느 명망 높은 이의 화판이기에
원색물감 방탕하게 후려쳐도
신의 재능이라 이름 할 뿐인
봄은 누구를 보내기엔 한없이 부적절한 계절인가
궂은 날
비에 불어터진 국수처럼은 차마 너를 묻을 수 없다

(세상은 사랑하기에 알맞은 곳:
이 세상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디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가벼운 너의 어깨 흔들려
유행가 가사처럼 흔들흔들
산모롱이 돌아서면
또 산모롱
돌아 돌아
하늘 아래 첫 동네
이만하면 너도 날 찾지 못할 것이다
너는 헨델처럼 영악하지도 못하여
레일위로 흔적 두지 않았으리라
어서 네게도 아픔의 이완이 서운해지는 시간이 와야지
할미꽃 양지 마른 인연 하나 피워야지

묘비명도 없이
모든 건 순간이었다
잠시 손바닥 펴고 뒤집어 본 사이
지평에 걸린 빈집들 노을에 불살리고
나는 허깨비처럼 한식(寒食)의 냉방에
쫓기듯 돌아와 입은 채 꼬꾸라져
달뜬 신열에 몇 날을 가물거리면
꿈길에도 너
지운 문장(文章)처럼 백지 같을까
서늘한 새벽 한낮까지 길어져도
내 안에 누구 아무도 말 걸어오지 않을까

이별
그 지독한
리허설......

==작자 미상===
(이 시의 저작권은 '작자 미상'님에게 있습니다)


written by ===허허===
(이 글의 저작권은 '허허'님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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