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도하며..금화 김대중, 은화 노무현


3달여 전 지난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이 서거했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존칭 생략)은 충격 속에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라고 했고, 5월 28일 서울역 분향소에서 “나라도 그런 결단을 했을 것”이라며 노무현의 자살 서거에 깊은 공감을 나타내었으며 <6 .15="">행사에서는 “노 전 대통령과 저는 여간한 연분이 아니다. 전생에 형제간이었던 같다”라고까지 했다.

김대중, 본관은 경남 김해, 출생지는 전남 신안, 빈농의 집안에서 1924년생, 목포상고 졸업..
노무현, 본관은 전남 광주, 출생지는 경남 김해, 빈농의 집안에서 1946년생, 부산상고 졸업..

본관과 출생지는 대각선으로 교차하고 출생 신분이나 학력, 정치 노선과 비전에선 쌍둥이 형제라 불러도 좋을 만큼 판박이었던 두 사람, 난 해는 달랐어도 같은 해 함께 가셨다. 가히 천생연분이다. 김대중 자신의 말처럼 과연 전생에서 두 사람은 형제간의 연분이었나 보다.

생전 김대중의 노무현에 대한 평가는 "노무현,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라는 노무현에 대한 미공개 추도사에서 최상의 경의를 잘 나타내고 있다.

http://www.knowhow.or.kr/bongha_inform/view.php?start=0&pri_no=999720731&mode=&search_target=&search_word=

생전 노무현의 김대중에 대한 평가는 노무현의 저서 <여보, 나 좀 도와줘>란 책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란 책자의 군데군데서 소개되고 있다.

내가 본 DJ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며 공부하는 사람, 그래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사람이었다. DJ에게는 모든 문제들을 항상 미리 앞서서 깊이 생각해 두는 좋은 습관이 있었다. 정말로 열심히 사는 사람을 손꼽으라면 나는 DJ를 주저하지 않고 추천할 것이다.(여보, 나 좀 도와줘 95P-96P)

나는 YS를 '탁월한 정치인'으로 평가하면서도 그를 '지도자'로 인정한 일은 없다. 그러나 DJ에 대해서는 '지도자'로 이름 붙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래 전에 역사의 인물이 된 김구 선생을 제외하고는 역대 대통령이나 현존하는 정치인 중에서 내 마음 속으로 지도자로 생각해 본 사람이 없고 보면, 나로서는 그분을 특별히 존경하는 셈이다.(여보, 나 좀 도와줘 98P)

내가 그동안 부품소재 산업에 대해 많이 떠들었는데 알고 보니 지난 2001년에 DJ가 법까지 다 만들어놓았더군요. 손댈 만한 것은 대개 한 번씩 손질을 해두었더군요. DJ 시절 일어났던 시스템의 정리나 정책 시스템의 과정들을 한번 연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또 다른 DJ의 면모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치의 천재 DJ가 아니라 정책에 있어서도 천재성을 탐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양반은 총체적인 능력, 역량이 천재급 정치인입니다.(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120P)

김대중 대통령은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퇴임 5년이 지난 지금 이런저런 평가들이 있지만, 내가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이 정부의 구석구석에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내가 창조적인 것이라고, 내가 처음 시작한다고 생각하고 들어가 보면, 김대중 대통령의 발자취가 있더란 말입니다. 그런 것이 한두 개가 아니고 상당히 많습니다. 정부 혁신 부분에도 그런 것이 있고,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모든 것...(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119P)




사람들은 그런 김대중을 ‘인동초’라 부르고 노무현을 ‘바보'라 불렀다. '인동초(忍冬草)'는 이름처럼 겨울을 이겨내는 꽃이다. 이 풀은 엄동설한에도 잎과 줄기가 얼어 죽지 않고 견뎌 이듬해 여름이 되면 화사한 꽃을 피운다. 김대중의 인생 역정을 보노라면 인동초라는 별칭 만큼 딱 제격인 것도 없지 싶다.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서 혹독한 겨울이 닥칠 때마다 그는 마치 인동초처럼 견뎌내고 꽃을 피워왔기 때문이다.


인동초(금은화)

인동초는 이름도 참 많습니다.
꽃의 수술이 할아버지 수염과 같다고 하여 '노옹수'
꽃잎이 펼쳐진 모양이 해오라기 같다고 하여 '노사등'
꽃속에 꿀이 있으니 '밀보등'
귀신을 다스리는 효험있는 약용식물이라 하여 '통령초'
그리고아래 전설속의 '금은화'
정말 많은 이름을 갖고 있지요...??


---두자매 이야기----

옛날 어느 부부가 쌍둥이를 낳았는데
두 딸이 너무 예뻐서 언니는 금화(金花) 동생은 은화(銀花)라고 이름을 지었다합니다.
금화와 은화는 우애 있고 착하게 잘 자라서 어느덧 시집갈 나이가 되었지만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부부가 몹시 걱정을 하고 있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언니 금화가 열이 심하게 나면서 얼굴과 몸이 온통 붉게 되었답니다.
의원을 불렀지만 의원은 “이것은 열병으로 약이 없다”라는 말만 할 뿐 치료를 포기하였답니다.
결국 언니 금화는
동생 은화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답니다.
며칠 뒤 동생 은화도 역시 언니와 같은 병을 앓다가
자신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부모에게
“저희들은 비록 죽지만 죽어서라도 열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초가 되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답니다.

다음 해 두 자매의 무덤에서 이름 모를 싹이 자라고 있었는데
여름에 노란색 꽃과 흰 꽃이 피었는데
처음 필 때는 흰색이었다가 점점 노란색으로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후 마을에 열병이 돌았는데 그때 마을 사람들은 그 꽃을 달여 먹고 낫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 꽃을 언니와 동생의 이름을 합해서
금은화(金銀花)라고 불렀다고 하는 전설입니다.


(*인동초 이야기 출처 : http://tong.nate.com/suksan90k90/49551568)

대한민국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김대중’ 하면 뇌리 속에 떠올리는 영상이 하나쯤은 있을 게다. 납치 되었다 극적으로 풀려난 뒤 초췌한 모습으로 기자 회견을 하던 유신탄압의 대명사 김대중, 수의를 입고 사형 선고를 받던 법정에 선 민주투사 김대중, 수십만의 청중 앞에서 연설하는 대통령 후보 김대중,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 회담하던 대통령 김대중,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대통령 김대중, 등등.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의 이름 석 자 뒤로 여러 영상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 모든 영상을 압도하는 한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노무현의 경복궁 영결식장에서 비통해하는 권양숙 여사의 손을 움켜쥐고 오열하던 모습이 그것이다. 병든 노구에서 뿜어져 나오던 그 슬픔, 노회한 정치인이 아닌 인간 김대중의 노무현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그 애도를 보며 전율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앞으로도 그 모습, 그 장면은 내가 김대중을 회억하는 모든 장면들의 첫 장면이 되지 싶다.

그 모습을 보았기에 나는 감히 ‘인동초 김대중’을 전설 속의 ‘금화’라 부르고 ‘바보 노무현'을 ‘은화’라 부르기를 마다지 않는다. 자기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은 아픔을 노구는 종내 견뎌내지 못하고 자신의 표현처럼, 전설속의 금화, 은화처럼, 형제의 뒤를 이었다. 협력과 견제라는 긴장 관계 속에서도 민주주의와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큰 틀에서는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 왔던 두 사람은 전설 속의 금은화로 다시금 태어나고 있다.

두 사람은 죽어서 세상의 귀감이 될 만한 김대중, 노무현이란 이름을 남겼고 민주주의적 가치와 통일의 정신을 남겼다. 한반도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불안하고 정치, 경제, 사회, 남북관계 각 분야에서 불안요소들이 독버섯처럼 잠복하고 있다. 한반도는 언제 또다시 질병으로 신음하며 갈팡질팡하게 될지 모른다. 그 때 우리는 건국 후 40여 년을 달여서 끓인 금은화라는 명약만이 치료약임을 깨닫게 될런지도 모른다. 만병통치 불로장생의 약은 못될지언정 마을에 도는 열병 정도는 거뜬히 치료할 정도는 되리라.

금화와 은화가 죽어서 꽃으로 다시 피어 마을을 구제하는 명약으로 되살아오듯 대중과 무현도 죽어서 민주주의와 통일의 꽃으로 다시 피어 한반도를 구제하는 참정신으로 되살아오길 기대해본다.

두 분 형제여, 잘 가시라. 대한민국이 항로를 읽고 갈팡질팡할 때 금은화 같은 명약이 되어 길 잃은 사람들을 구하러 다시 오시라. 삼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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