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이야기3....나는 이렇게 낚시한다 - 釣而不網


채우러 가는가 비우러 가는가

“여보시오, 어딜 가오?”
“세월을 낚으러 가오.”

낚시꾼들이 하기 좋은 말로 낚시를 세월을 낚는 신선놀음이라고들 한다.

불행히도 난 숱한 낚시 여정 속에서도 무욕의 경지에서 세월을 낚는 신선 같은 낚시꾼을 만나거나 본 적이 없다. 내 짧은 보행 탓이기도 하겠다.

바늘도 없이 실만 매단 낚시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았다는 강태공조차 가슴 깊은 곳엔 웅심이 들끓었으니 그 또한 무념무상무욕의 경지인 조선(釣仙)이라고는 칭할 수 없음이라.






낚시터에도 위선은 있다.

가슴 가득 찬 욕심을 감춘 채 “좋은 경치와 공기, 햇살 부서지는 물가에 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요.” 라면서 예닐곱의 낚시대를 펼치는 손길이 무척이나 바쁘다. 물가에 서는 것만으로 이미 만족한 꾼의 모습은 아니다. 꾼들의 십중팔구는 같은 모습이다. 어차피 먹거리 낚시가 아닌 캐치앤릴리스로 즐기는 낚시라면 물가에서 물고기를 낚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낚시는 세월을 낚는 게 아니라 물고기를 낚는 행위인데 굳이 아닌 보살 할 필욘 없다.

채우러 가는가? 비우러 가는가? 채우면서 비운다.

주말 낚시를 즐기는 직장인들의 한결같은 언사는 낚시를 통해 한 주간 쌓인 스트레스를 푼다는 것이다. 할 일 없는 꾼이라면 답답함을 풀어주는 일일 테고 답답함도 스트레스도 없는 꾼이라면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는 일이기도 하겠다.

스트레스는 포만감으로 밀어내야 한다. 좋은 경치와 공기, 햇살은 덤으로 채우고 낚시에서의 포만감은 물고기를 잡는 손맛에서 비로소 느껴지는 감성이다. 물고기를 잡는 손맛이 주는 포만감에서 오는 행복, 그게 낚시다.

스트레스를 비우러 왔다가 스트레스를 더 채우고 가는 꾼들도 많다. 기대한 만큼 손맛이 주는 포만감을 맘껏 누리지 못한 탓이다. 한 마리를 잡아도 만족하는 꾼이 있고 백 마리를 잡아도 만족하지 못하는 꾼이 있다. 포만감의 척도는 사실 마리수가 아니다. 낚시하면서 마리수를 포만감의 척도로 삼으면 스트레스를 풀 일 보다 스트레스가 쌓일 경우가 더 많다.

한 마리를 잡아도 만족하기 위해선 낚시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가다듬어볼 필요가 있다. 낚시에 임하는 마음가짐이란 곧 꾼들 개개인의 낚시철학이다. 꾼들마다 천차만별이겠으나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른 꾼들에게선 대략 일맥상통하는 낚시철학을 엿보게 된다.

무슨 일이든 경지에 이른 사람은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법이다. 백 마리를 잡아도 웃지 않고 한 마리를 잡아도 미소를 놓지 않는 꾼일 정도면 자작(慈作)의 수준은 된다고 하겠다.


한 마리에도 만족하는 낚시는 이런 낚시다

낚시의 기술이 일정한 수준에 오르면 물고기를 희롱하게 된다. 당겼다가 놓았다가 애간장을 녹이며 연애하는 그런 심정으로 물고기를 상대한다.

연인의 심정보다는 사기꾼의 심리를 예로 듦이 낫겠다. 어찌 보면 낚시도 꾼이 물고기한테 미끼로 사기를 치는 일과 같잖는가.

손쉽게 얻는 결과보다는 치밀한 계획과 과정을 통해 사기꾼이 어떤 결과물을 획득했을 때 얻는 카타르시스가 분명 더 클 것이다. 헐리웃 영화 보니까 그런 것 같더라.^^. 치밀한 계산과 험난한 과정 끝에 얻는 결과물은 분명 손쉬운 결과물을 대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 있다. 동네 뒷산보다야 험난한 과정을 겪으면서 고봉을 등정했을 때 산악인들이 더욱 큰 감흥을 느끼듯 낚시도 그러하다.

요즘 낚시는 사람들의 선입견처럼 그리 따분하거나 단조롭지 않다. 붕어낚시만 하더라도 붕어의 종류(중국붕어, 떡붕어, 토종붕어)에 따른 낚시의 기법이 다양하고 낚시기법에 따른 미끼의 종류도 참으로 다양하다.

현대낚시의 기술은 기법이나 미끼에 따라 아주 세분화되어 있고 알지 못하면 쓰지 못하고 쓰지 못하면 낚지 못한다. 오죽하면 요즘 꾼들 사이에선 ‘머리 나쁜 놈은 낚시도 못하겠다’는 말이 떠돌까. 골퍼가 잔디를 뜯어 바람에 날려 공의 진행방향을 연상하듯 꾼 역시 볼 수 없는 물 속 상황을 끊임없이 연상하며 분주히 움직여야만 포만감을 만끽할 수 있다. 세월 낚는다라는 말이 옛말이다.

낚시터의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채비를 적절히 운용하는 임기응변을 낚시를 잘 하는 최고의 덕목으로 꼽는다. 한마디로 물고기의 기분에 맞춰서 낚시하라는 뜻이겠다. 아직도 이 말은 낚시꾼들 사이에선 최고의 지침이다. 그러나 이 말 속엔 ‘많이 잡기 위해서’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많이 잡기 위해 임기응변하라는 것이다.

임기응변에는 동의하면서도 한 마리를 잡아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낚시를 위해선 한 차원 더 업그레이드 된 사고가 필요하다.


나는 이렇게 낚시한다

우선, 낚시터엘 가면 물고기를 쫒지 않는다. 따로 포인트가 될만한 곳을 계산하지 않고 어디든 앉는 곳이 포인트란 생각으로 임한다. 주위가 번잡스럽지 않고 한산하여 낚시하기에 편안한 자리면 그만이다.

다음으로 할 일이 내가 물고기를 쫒지 않았으니 물고기가 나를 쫒게 하는 일이다. 물고기와의 사랑싸움이 시작된 거다. 옆자리에 먼저 온 꾼이 바닥에 채비를 붙여 연방 낚아 내더라도 따라가지 않는다. 노지와는 달리 어자원이 풍부한 관리터에선 더욱 그리한다. 물고기가 물속에 있다는 믿음만 있다면 그날의 내 기분에 따라(물고기의 기분이 아닌) 내가 가장 선호하는 낚시 기법으로 임한다.

나는 주로, 짧고 휨세가 부드러운 낚시대로 바닥이 아닌 물의 가운데층에서 떡붕어를 낚아내는 낚시기법을 선호한다. 낚시 전문 용어로 ‘미터낚시’(수면에서 1미터 정도의 수심층에서 구사하는 낚시)라고 한다. 수심층이나 어종에 따라 꾼들에겐 저마다 선호하는 낚시의 기법들이 있다.

내가 미터낚시를 선호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단척(전장3미터 이하의 짦은 낚시대) 낚시대는 채비의 운용과 조작이 편안하기 때문이다. 여타 기법에 비해 채비의 투척과 회수가 분주하지만 그도 재미 삼으면 즐거운 수고다. 그 외에도 적절한 떡밥 운용으로 물고기를 쫒아다니지 않고 불러들이는 맛이 일품인 낚시다. 수온이나 여타 다른 낚시터 여건의 변동에 의해 불러도 물고기들이 꿈쩍도 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때조차 단 1마리라도 내 의도에 따라 응해준다면 대환영이고 비로소 1마리를 잡아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낚시가 된다.

꽝을 쳐도 물가에 서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는 없기에^^언제나 미터낚시를 고집하는 건 아니다. 1마리라도 잡아보기 위해 계절의 변화나 낚시터의 여건에 따라 바닥에서 표층까지 때론 장척(4.5미터 이상의 긴 낚시대)까지 동원할 때도 있지만 대개는 위와 같이 낚시한다.

옆자리에서 연신 낚아 올린다고 마음이 조급하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어쩌면 고기 맘이 아닌 내 맘을 우선하기에 가능한 일이지 싶다. 물론 이런 생각의 기저에는 ‘언제든 내 맘을 바꾸기만 한다면 물고기는 낚을 수 있다’라는 교만이 배어있는지도 모른다. 단 1마리만 잡아도(때론 꽝을 치더라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런 교만이 허세라도 좋다. 못 잡아서 안달 내며 스트레스를 쌓는 일보다야 한결 낫지 않겠는가.

이런 맘으로 낚시하다 보면 때론 백 마리를 잡아도 불만(?)스러울 때가 있다.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한 대로 물고기를 희롱해서 낚아내는 게 아니라 밥알을 달아 던져도 입질할 기세로 활성이 너무 좋아 물고기들이 무시로 낚이는 경우가 그렇다. 스릴 있는 과정을 거쳐 결과물을 획득할 때에 비로소 누리게 되는 카타르시스 같은 게 없다. 이 무씬 배부른 소리?^^ 내가 고기를 희롱하는 게 아니라 고기가 나를 희롱하는 기분은 학실히 별로임엔 틀림없다. 그럴 땐 꾼이 물고기를 피하는 희한한 상황이 연출하기도 한다. 어자원이 부족한 노지(야생의 저수지나 수로)에선 턱없는 사치겠지만.ㅎ~


낚시터에서 버릴 것과 취할 것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꾼들이 물가에서 세월을 낚는답시고 대충 풀어져서는 곤란하다. 위수에서 낚시로 노닐던 강태공처럼 천하를 낚을 웅심을 벼리지는 않더라도 낚시터에서 반드시 취(取)하고 사(捨)해야 할 것은 있다. 취할 것은 쓰레기와 포만감이요, 버릴 것은 스트레스와 욕심이다.

행복을 위한 낚시에서 외려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면 낚시하는 자신의 맘 가짐을 수정해야 한다. 꽝을 쳐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낚시가 맘먹기에 달렸다고 하나 말처럼 그리 쉽지 않고 그 맘이란 게 수련 없이 좌지우지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낚시가 곧, 시시때때로 좌충우돌하는 변덕스럽고 스트레스에 찌든 맘을 다스리는 수행이고 단련이며 공부라는 생각을 가져보자. 언젠가는 자신이 던져 놓은 미끼도 없는 빈 바늘에 전설의 황금 물고기가 걸려있음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행복’이라는 이름의 물고기!




===東山高臥===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