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변절의 복선인가, 유연성인가?



봄 붕어에 정신 팔려 당시엔 듣도 보도 못했건만 지난3월 초입, 노회찬의 조선일보 창립 90주년 기념식 참석과 그곳에서의 처신을 두고 말도 탈도 많았던 모양이다. 6.2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범야권 서울시장 후보 단일화를 위해 그의 사퇴를 압박하는 소재로 그 얘기가 다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며칠 전 같은 당의 쌍두마차격인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가 반MB 범야권 후보 유시민 후보의 당선을 위해 후보직에서 사퇴하는 대승적 결단을 내린 터에 졸지에 진보신당의 존망을 한 어깨에 짊어지고 완주를 외치는 그를 향한 범진보진영의 도리깨질이 매섭기가 그지없다. 독야청청 별난 늠도 아니면서 뻐팅긴다는 거다.(*관련 글 모음 : http://blog.daum.net/yuna-kim/8712932)

그 어떤 변명으로 울타리를 쳐도 노회찬의 3월 행각에 대해선 진보 진영측이 고운 시선을 보내기가 힘든 건 사실이다. 민노당에서 진보신당으로 분당하며 삐딱선을 타던 그 순간부터 이미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자바리 깊숙한 곳에서부터 움터오른 오기로 똥을 내지르고 싶었을런지도 모른다. 사람들이란 희한하게도 한 번 삐딱선을 타게 되면 결코 곧게 펴는 법이 없더라.

'포기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변절한다'

'포기하면 좌절하고 좌절하면 변절한다'는 이해찬 전 총리의 말은 과거 운동권 인사들의 인생 궤적을 정리하는 바로미터로 딱 제격이지 싶다. 그렇다. 7,80년대 대중적 명망이 높았던 대표적 운동권 인사들의 그 후 행적들을 보면 작금의 자칭 타칭의 진보적 인사들의 미래를 엿보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 성급히 중간 결론하면, 노회찬이 이재오나 김문수의 길을 따라 걸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의 제도권내 정치인으로서의 역정이 '많이 고단해' 뵌다. 그에 따라 초심을 포기할 것 같고 좌절할 것 같고 변절할 것 같은 나름의 사연들도 차곡차곡 쌓여 가는 듯하다. 비제도권 운동권 인사들과 달리 제도권에 진입을 했거나 진입을 시도했던 운동권 인사들에게서 나타나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성과에 조급해한다'는 점이다.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이나 프로스포츠 선수들과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직업인 제도권 정치인이라는 게 그렇잖는가. 과거의 영광은 없고 현재의 인기만이 존재의 이유인지라 성과를 내지 못하면 사람이든 정당이든 잊히는 게 그 판의 절대 생리다. 정치판이란 곳의 생리가 원래 그런데다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그 잘난 자부심 때문일까, 이슈를 통해서든 선거를 통해서든 단기간 내에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조급해하는 정도가 연예인들이나 프로스포츠 선수들보다도 더 극성스럽다. 어딜 가나 좀 설친다 싶으면 죄다 운동권 출신 경력의 인사들이니 그 극성들을 누가 말리랴.

민중당을 이끌던 이재오, 김문수의 저 화려한 변신을 감히 뉘라서 짐작이나 했겠는가. 맞은 델 자꾸 맞다 보니 내성이 생겨서일까. 제2의 이재오, 제3의 김문수가 탄생한대도 이제는 생뚱맞지도 않을 것 같다. 포기한 늠은 좌절하고 좌절한 늠이 변절하는 것도 다 제 인생인 걸 뉘라서 이래라 저래라 하겠는가. 허나, 공연히 잘난 척 나대며 한껏 남들의 기대를 부풀렸다가 실망을 안겨주는 행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3월 행각'만 놓고 보아도 또 한 명의 명망 있는 진보 인사가 새로운 시작을 예비하는 복선인가 싶어 영 씁쓸한데 선거를 하루 앞둔 지금까지 그는 극구 오기를 부리고 있다. 그의 입장에선 3월의 행각은 ‘변신이 아닌 유연성의 발현’이고 지자체 선거 완주는 '오기가 아닌 원칙의 고수'라고 할 테지. '유연성과 원칙', 내가 가장 좋아하는 어휘들이기도 하다만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선 삶 속에서 저 둘을 조화롭게 구현해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평가가 워낙에 상대적인 개념들이기 때문일 게다. ‘유연성과 원칙의 조화’, 노회찬이 넘보기엔 아직은 어려운 경지이지 싶고 그에 관한 한 심상정이 차라리 한 발 정도 더 득도했지 싶다. 혹여 진보신당이 민중당의 길을 걷는다면 머잖은 장래에 노란색 점퍼를 입은 심상정과 파란색 점퍼를 입은 노회찬을 보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재야에서의 초심을 잊고 제도권내 정치판에 발을 들인 순간, 어쩌면 그들은 이미 진보적 지식인이 아닌 정치인(꾼)일 뿐이었던 걸 괜스레 헛 기대를 부풀려온 건 아닐까. 들어가면 그 놈이 그 놈이 되는 판에서 변신과 변절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어리석은 미련과 헛된 기대라도 그 또한 인지상정이라 선거를 하루 앞두고 맴도는 아쉬움을 이렇게나마 잡설로 푼다.

6.2지자체 선거에서 노회찬과 진보신당의 득표율이 형편없이 저조할 경우, 노회찬이나 진보신당의 상처는 꽤나 클 것이고 노회찬과 진보신당에게 더 이상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심상정은 현실의 벽을 절감하고 원칙 대신 유연성을 택하여 돌아서 갈 길을 예비해 두었다만 노회찬은 지난 3월 롯데호텔에서 '조선일보를 위하여' 치켜든 와인잔 속에 가득 채웠던 그때의 유연성(?)은 어디에다 꼬불쳤는지 6.2지자체 선거에서는 시종일관 '오직 원칙'을 고집하며 배수진을 치고 있다. 근데 자꾸 왜 내 눈엔 호기롭게 배수진을 치고 장렬히 전사하는 용장의 모습보다는 적장 앞에 검과 투구를 내리고 무릂 꿇어 목숨을 구걸하는 패장의 모습이 그에게서 연상되는 걸까.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서 김문수, 이재오와 함께 굳게 맞잡은 손을 유세장에서 흔들어대는 노회찬을 상상해보는 건 붕어랑 노니는 유연자적 중에 누리는 내 나름의 유쾌한(?) 상상이다.


===東山高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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