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5


군대 이야기 5
글쓴이:허허




내가 소속된 본부대는 행정반과 인사, 정보, 작전, 군수, 통신, 수송, 의무, 탄약, 취사파트로 이뤄졌다.
겨울에는 체력단련이라는 명목으로 전 대원을 모아서 상체를 벗긴 후, 태권도를 시키므로 오전 일과는 9시부터 시작이었다.
말이 좋아서 체력 단련이지 실제는 체력 학대에 가까웠다.
누구나 회피하고 싶어하지만 부대장의 지시사항이기 때문에 직업군인이라도 예외가 없었다.
초병과 상황실 요원, 취사병과 나만이 열외일 뿐이었다.
내가 소속된 부대의 직업군인 수는 장교를 포함하여 예순 명 남짓이었다.
그들은 보편적으로 한 달에 두 번 정도 이발을 했다.
내가 조져야할 머릿수는 월 평균 120개 정도고 1일 평균 네댓 개 정도였다.
머리 하나 조지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면도를 포함해서 10분이 안 걸렸다.
6평 남짓한 이발소는 나만의 독립공간이었다.
고참들이 땡땡이 칠 공간 확보 차원에서 이발소를 이용할 가능성은 없었다.
수직 사회인 군에서 사병이 간부들 전용 공간에서 게길 수가 없었다.
간부 1인당 2500원을 이용료로 월급에서 원천징수하지만 운영비는 600원짜리 면도날 두 통이면 족했다.
부대장 입장에서 볼 때 많은 수입은 아니지만 마진율이 아주 높은 수입원이다 보니 이발소에 무한(?) 특혜를 제공했다.
모든 경계근무 및 노역에서 열외, 사병들의 간부 이발소 출입 엄금시켜, 내게는 이발소가 해방구나 다름없었다.
군인 이발은 단순했다.
어떤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그 일의 특성을 파악하고 깊은 관심만 가지면 빠른 시간 내에 숙련공이 될 수 있었다.
군인 이발은 창조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숙련을 통해서 익히고 나름의 감을 잡으면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기능일 따름이었다.
한 달이 지났을 무렵 이발소에서의 내 위상은 이전과 천양지차였다.
'후루꾸 새끼' 또는 '이등병의 탈을 쓴 피 칠갑'에서
'당신은 대가리를 깎기 위해 태어난 사람'으로 바뀌어버렸다.
하루 8시간의 일과 중에서 내 업무의 양은 한 시간꺼리가 안 됐다.

한 내무반에 마흔 명씩 생활을 하다 보니 실내 내무반 관리에서 부터 바깥청소, 식수관리 등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한다.
다섯 식구를 둔 가정의 가사 노동량과 비교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내가 소속된 내무반에선 배식과 설거지는 상병급이 맡았고 바닥에 관련된 일은 그 아래 기수가, 외곽 청소는 일병, 침상은 이병 등으로 분담이 되어 있었다.
원래 군부대에서 가축을 못 기르지만 새는 예외였다.
연탄난로를 이용한 난방이어서 일산화탄소 중독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 까닭으로 사람보다 일산화탄소에 훨씬 민감한 문조라는 새를 길렀었다.
내무반 관리에서 내가 맡은 업무는 문조라는 새를 관리하는 일이었다.
내게 그 업무를 배당한 이는 의붓아비인 백운제 병장이었다.
"어이~ 새끼, 문조는 상병 2호봉인데 니는 계급이 어찌돼?"
그는 나를 새끼라고 불렀고, 내게 그를 엄마라고 부르라했다.
"넵. 엄마, 이병 4호봉인데~예."
사병 계급에서 호봉수는 그 계급을 단 달수를 말한다.(일병 3호봉 = 일병된지 3개월째)
아침 점호 후 각자 맡은 청소를 할 때 나는 고함치는 게 일이었다.
"충썽! 이병 허허, 문조 상병 님의 침상을 정리 하려합니다. 이에 신고합니다. 충썽~!!"
내가 문조라는 새를 담당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서 죽어 버렸다.
그 새는 백운제 병장이 휴가를 다녀오면서 사온 새였다.
제대를 앞두고 각별한 애정을 보였던 그 새가 죽었으니, 또라이로 소문난 그의 횡포를 예감한 병사들의 공포는 상상 이상이었다.
더욱이 새를 담당한 나는 아무리 백운제의 의붓 새끼라지만 무사하지 못 할 거라 했다.
하지만 백운제의 반응은 의외였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탈지면을 깔아서 새를 올리고서 나를 불렀다.
"어이 새끼, 문조 상병은 니한테 배다른 형이니 니가 상주해라"
아무리 군바리지만 상주는 상복을 입어야 한다면서 휴지를 풀어서 머리와 온 몸에 칭칭 감게 했으며, 상주는 지팡이도 있어야 한다면서 밀대 자루를 쥐어주면서 곡을 시켰다.
그리곤 백운제는 내 밑에 모조리 집합을 시켜서 저녁 점호 전까지 문상을 하라고 했다.
한 사병을 따로 불러 부의록을 만들어 기록을 하라고 시켰다.
악명 높은 백운제의 명인지라 빠짐없이 문상을 왔다.
오는 이 마다 새가 뉘어 있는 의자를 향해 절을 두 번씩 하였고
나는 옆에 서서 밀대자루를 잡고 곡을 했었다.
새에게 절이 끝나면 나와 맞절을 하면서 부의금조로 담배를 한두 개피씩을 내어 놓으면서 위로의 말을 전했다.
"얼마나 애통하십니까. 뭐라고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 지...."
"차마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에고 에고~~"
그 날 백운제가 챙긴 담배는 한 보루가 넘었다.


(to be continued)

written by ===허허===
(이 글의 저작권은 '허허'님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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