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4


군대 이야기 4
글쓴이:허허




`85년 2월 2일 오후.

군종병으로 배치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난데없는 포병이라니 기가 막혔다.
훈련소 동기 8명이 같은 부대에 떨어졌으나 동기들과 달리, 나는 포병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포병에 대한 기초 상식조차 없는 상태였다.
포대 배치를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에서 고향이 부산이라는 어느 기간병과 마주쳤다.
그의 말인즉 이 부대는 105밀리 포라서 포를 인력으로 들어서 돌리는 방식인데 디스크 발병률이 아주 높다고 했다.
또한 포구를 겨냥할 때는(방열) 여러 명이 동시에 힘을 써야 하는 방식이라 군기가 강하고 구타가 상습적이란다.
고생길이 열렸다며 안쓰러워하는 그의 말에 좇됐단 생각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단 군법사가 찾아와서 전하길, 군종으로 받아 들여야 하나 결원이 없어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단다.

월요일, 대대장 신고를 위하여 간단한 교육을 받고 대기실에 있는 동안 대대장의 꼬봉역인 주임상사가, 여기서 이발을 한 경력이 있는 놈 있냐고 물었다.
꼭 이발사를 직업으로 하지 않았더라도 상관없다고 했다.
잽싸게 손을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이발경력이라고 해봐야 깎이는 역할이었지 이발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포병으로 끌려가면 좇된다는 강박관념의 결과였다.)
갑자기 주임상사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바로 대대장 신고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혼자 대대장실로 들어가더니, 조금 후 모두 들어오라고 했다.
신고를 위해서 도열하는데 대대장이 손사래를 친다.
"신고는 치우고 밖에서 이발했다는 병사가 누구지?"
씩씩하게 답했다. "넵!! 이병 허허!!"
"내 머리를 자를 수 있겠나?"
"넵, 자를 수 있습니다!"
두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는다.
"반갑다. 정말 잘 왔다. 어이 주임상사, 얘 어디로 보내려 했지?"
"브라보 포대(보병으로 치면 2중대)로 배치했습니다."
"일마를 본부대로 보내고 간부 이발소를 일마한테 맡겨라"

뒤에 안 얘기였지만 거기는 독립부대이다 보니 대대장 천국이었다.
대대장은 돈 욕심이 많아 돈이 되면 무엇에든 손을 대었고, 대표적인 게 차량 기름 도둑질과 50여명 되는 직업군인들을 상대로 한 간부식당과 세탁소와 이발소를 운영하여 이익금을 챙겼고, 인력은 각 사업장에 적합한 방위병을 충당 받아서 운영해왔는데 85년 부로 방위병 인가가 PX(군대 매점)에만 두 명을 두고 나머진 없어졌단다.
간부 식당이야 취사병 중에서 차출하고, 세탁소야 고참이면 옷 못 다리는 놈 없으니 맡기면 되는데 이발병은 전문 기술이 없이는 불가능한 분야라 폐업 중이었는데 내가 이발을 할 수 있다니 돈벌레였던 그로선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일마는 모든 훈련, 보초에서 열외시키고 이발소에만 있게 해라!"

내가 배치받은 2내무반은 본부행정반, 인사, 작전, 군수, 병기 과와 측지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각 과마다 적게는 4명에서 많은 부서는 스무 명 가까운 팀원을 이루고 있었으나 나만 이발병이란 신분이었다.
신병 보충은 무작정 이뤄지는 게 아니라 인사과에서 각 파트별로 제대 예정인원을 감안하여 신청을 하고 배정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신병이 들어올 때는 반드시 신병이 인수받을 고참이 있다.
그 고참과 신병은 임무로는 인수, 인계인의 관계지만 신병의 빠른 적응을 위해서 사수와 조수(일명, 아비 자식관계다)로 묶어준다.
하지만 나는 아비가 없었다. 굳이 위에 열거한 족보에 근거해서 정체성을 찾는다면 인가가 없어지면서 사라진 역대 방위들이 내 아비가 된다.
방위를 아비로 둔 사생아, 그게 내 정체성이라면서 사람들은 놀렸다.

의무대 선임하사가 나를 찾았다.
고향이 김해 진영이냐고 확인을 하더니 중학교 어디 나왔냐고 묻고는 나보다 10회 선배라고 했다.
알고 보니 형과 친구였다.
고향 후배에 친구 동생이니 어려움이 있으면 가능한 도와주겠다고 했다.
괴롭히는 놈이 없냐고 묻기에, 사실 나는 이발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주임상사에게 말해서 휴가를 보내 줄 테니 일주일 안에 최대한 이발 기술을 익혀오라고 했다.
덤으로 본부대 고참 중에서 제일 악질인 백운제 병장을 내 아비로 묶어줬다.
백운제, 서울 동대문구 북아현동 사람이란 것만 알고 그가 제대한 이후로 본 적은 없지만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부대에 있는 이발 기구는 쓸 수가 없으니, 허허가 사용하던 장비를 가지러 보내야 한다는 명목으로 휴가를 청원하여 주었다.

휴가를 떠나기 전날 2.12총선용 부재자 투표를 하게 되었다.
한 명 한 명씩 본부대장실로 들어갔다.
내 차례에 들어갔더니 본부대장이 손으로 기호1번을 가리키며 "그냥 찍어." 했다.
"예" 하면서 2번을 찍었다. 다른 어떤 이유도 없었다. 그냥 찍었다.
"이 새끼가 미쳤나"면서 펄쩍 뛰기에 마치 실수인양 시침을 뗐더니 조인트 몇 대 채이고 말았다.
보직 배치부터 복 받은 놈이 휴가 복이 터졌다며 아비 백운제 병장이 휴가복을 다려주면서 놀렸다.
대대장이 출근하면 신고하고 휴가를 떠나기로 예정되다 보니 전날부터 잠을 설쳤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데 행정반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 당장 영창 갈 준비(세면도구 챙김)해서 대대장께 신고하러 가잔다.
부재자 투표에서 야당에 투표한 사병은 모두 근무태만으로 영창 보내라는 지시가 사단으로 부터 내려와서 할 수 없단다.
27명이 같은 죄명으로 영창을 살았다.
영창 보름 살면서 부지런히 맞았다.
철창타기 1번에서 18번까지 마스터했다.
영창을 살고 나와서는 어찌된 일인지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사단 의무대로 외진을 갔다가 수도 통합병원에서 한 달을 입원해 있다가 퇴원을 하였는데 퇴원 사유는 꾀병이란다.
사실 꾀병이 맞았다.
처음엔 허리를 펼 수가 없었지만 일주일 즘 지나고부터는 아픈 데는 없었다.
그냥 버티면서 능청을 떨었던 거다.
간 기능이 많이 떨어졌다는 진단은 받았지만 입원을 요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부대로 돌아오니, 그 사이 부산 사는 고참이 휴가를 가서 아버지께 알리는 바람에 아버지가 올라 오셔서 난리를 피웠다.
그 덕에 보름간 위로휴가를 받았다.
보름간을 동네 이발소에서 다 보냈다.
부재자 투표에 얽힌 일화가 많지만 생략한다.

밤 9시가 넘으면 일석점호라는 걸 한다.
야간 당직 사관이 인원 점검 및 내무반 위생상태 점검과 개인장비 점검을 겸하는 행사다.
21시 20분 쯤 되면 침상 앞에서 모두 도열해서 점검을 기다린다.
통상 그 시간에 내무반 오락을 겸한다.
신청자에 한해서 노래를 한 곡 부르게도 하고 때론 고참이 지명을 하여 한 곡 부르라고 한다.
그때도 절차라는 게 있었다.
가령 인사과 부원이면서 군사우편 발송과 수령을 담당하는 사병이면 노래를 부르기 전에
"일병 아무개 노래 일 발 발송!" 식으로 구호를 외치면 더 고참 되는 놈이 "접수!" 하고 허락이 떨어져야 불렀다.
통신병은 끝 구호를 "발신"이라고 하면 "수신"으로 화답을 해야 부르는 식이었다.
나는 음치에 가깝다.
그럼에도 고참들은 나를 자주 지명했다.
내 보직이 깎사(이발병)였던 관계로 "이병 허허, 노래 일 발 깎!"
모두들 뒤로 넘어가면서 "짤럿!" 한다.
그 재미로 내게 노래를 시켰다.

보름간 휴가를 겸해서 이발 기술을 익혔다고는 하지만 간부 이발소는 개업과 동시에 간부들 입에선 불평이 드셌다.
머리 깎고 가는 놈들 마다 한 소리씩 했다.
"어이구, 저 개놈의 새끼, 내 머리 다 조졌다." 정도는 약과였다.
귀를 가위에 씹혀서 피 칠갑 하는 놈, 면도가 아니라 회를 쳤다면서 투덜거리는 놈, 이발소에만 오면 피 칠갑을 당하기가 예사였다.
간부들 복지를 위한 이발소가 아니라 부대장 사익을 위한 이발소다 보니, 귀를 씹히고도 이발 요금은 월급에서 원천징수를 당했다.
아무 소리도 못하는 그들은 나에게만 분풀이를 했다.
"아이고 저 후루꾸 새끼" 라며 다들 치를 떨었다.
그러든 말든 나는 겉으로만 송구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속으로 "시퐁!! 나는 어쩌라고? 이발소 말고는 있을 데가 없는데……."
의붓아비지만 그래도 아비인 백운제 병장이 보다 못해서인지 대안을 내놨다.
"달리 방법이 없다, 많이 조져야 는다." 면서 자기 밑에 병장들 중에서 1-5호봉까지 집합시켜서 이발소 앞에 줄 세웠다.
한 명씩 들어오게 하고는 날더러 무조건 조지라고 했다.
원체 악질로 소문났던 백운제라서 피 칠갑을 당하면서도 찍소리 못하고 그들은 모르모트가 되어주었다.
나 또한 이발소에서 쫓겨나면 좇된다는 위기의식이 얼마나 강했던지, 첨에는 사람 잡더니 한 달이 지나지 않아서 사제 이발소보다 더 잘 깎는다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 무렵 백운제는 제대 기념이라면서 나의 새 야전 상의와 군화를 가지고 제대했다.
(to be continued)

written by ===허허===
(이 글의 저작권은 '허허'님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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