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이야기 2


군대 이야기 2
글쓴이:허허




`84년 12월 21일 오후.
눈은 버스가 훈련소에 도착할 무렵 폭설로 변해, 휘몰아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군악대가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가 버스에서 내리니 팡파르를 시작으로 행진곡을 연주했다.
소령 계급장을 단 영관이 과장된 몸짓으로 여러분의 입소를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인사말로 우리를 맞더니, 특전사의 자랑을 늘어놓았다.
이왕 때우고 갈 30개월을 사나이 중의 사나이로 거듭나지 않겠냐는 호소와 함께 지원자의 특전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을 하였다.
박력 있고 세련된 약장수 같았다.
일곱 여덟 명이 그 자리에서 지원을 하였다.
(훗날 듣기로, 그 순간에 꼬여서 간 애들 제대할 때까지 고생 절라 했고 제대하는 날까지 후회했다더라.)

특전사 지원병 모집관이 돌아간 후
"이 새끼들 봐라.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선임 조교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폭력과 얼차려로 전체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훈련소의 6주간의 교육은 교육훈련 일정에 대한 설명이나 이해를 돕는 게 아니라 이렇게 인격을 파괴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짧은 시간에 민간인 티를 벗기고 획일화, 규격화시키기 위해선 폭력을 통한 억압과 공포심 유발이 효과적이라는 걸 그들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6주간의 훈련기간에서 처음 4주는 신병교육대에서 받고 나머지 2주는 포병부대로 보내어져서 위탁교육을 시킨다고 했다.
신병교육대는 편제상 1개 대대였으나 부대 특성상 기간병의 수는 1개 중대 정도였다.
조교가 주축이고 기타 의무, 통신, 행정, 상황, 취사병 등으로 이루어졌다.
방위병과 현역병, 하사관후보생 교육이 파트별로 나눠져 있고 훈련병의 전체 규모는 600명 정도였다.
오전 6시에 깨워서 밤 10시에 재울 때까지 나름의 일정이 있지만 공포심 유발로 얼을 빼놓는 게 주요 일정이었다.
몇 명은 훈련에서 빼주는 대신에 사병식당에서 노역을 시켰다.
나는 4주 대부분을 노역으로 대신했지만 마지막 관문인 유격훈련은 예외가 없는 관계로 받아야 했다.
유격훈련이라지만 종일 얼차려로 체력을 고갈시키는 게 전부였다.

최루가스 흡입 체험 장은 창고처럼 밀폐된 열 평 남짓한 건물이었다.
스무 명을 단위로 밀어 넣은 후, CS캡슐을 불에 태워 발생하는 가스를 강제로 흡입하게 했다.
스무 명이 서로 허리를 잡게 하여 기차놀이를 시키며 '어머님 은혜'를 부르게 했다.
방독면을 쓴 조교 다섯 명이 단봉을 휘두르며 큰소리로 부르게 했다.
(산소 소모량을 늘여서 야무지게 마시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눈을 뜰 수가 없었고 눈물이 흘러내린 자리는 따끔거렸으며, 가슴은 따갑고 정신조차 혼미했다.
고통이 심해지니 분노가 일었다.
참다못해 조교를 덮쳐서 쓰러뜨린 후 방독면을 벗기자, 다른 조교들이 내게 달려들어서 단봉으로 무차별 난타를 가했다.
다른 훈련병들까지 합세하는 바람에 난투극이 벌어졌고, 그 결과로 조교나 훈련병이나 모두 가스에 질식되었다.
밖으로 나와서는 꼴통으로 찍혀서 조교들에게 개 맞듯이 두드려 맞았다.
내가 맞고 있는 시간에 나머지는 그 덕에 쉬고 있었냐고?
천만에, 대가리 박고 있었다.

유격체험을 끝으로 사실상 기초군사 훈련은 끝이었다.
훈련병을 모아 놓고선 대위 계급장을 단 중대장이 연설을 하였다.
그동안 대단히 수고 많았고, 제군들을 혹독하게 다룬 것은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강한 군인으로 키우기 위한 충심이었으니 이해를 하시고 오 분의 여유를 줄 테니 그동안 맺혔던 감정을 욕설로 풀어내라고 했다.
덧붙이길 어떤 욕이라도 상관없으니 자신을 포함한 조교들에게 하라고 했다.
중대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약속이나 한 듯이 "없습니다!!" 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중대장이 흐뭇한 얼굴로 웃는다.
이건 아니다 싶어서 잽싸게 손을 들었다.

"훈련병 허허, 욕 좀 해야겠습니다."

여유로운 미소를 보이며 기탄없이 하란다.
더불어 조교들을 도열시키고 자신도 옆에 선 후 내 말을 경청하라고 했다.

"야이~ 호.로 개.십.새.끼들아, 이 씹.불할 놈들아!!
니네들이 유능한 조교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택도 없다.
내가 보기엔 걸뱅이 안주 같은 놈들이다.
걸뱅이 중에서도 샌프란시스코 걸뱅이와 미.친.년 사이의 교배종이닷!!
니놈들 하는 행사머리 보니 클 때 무지 맞고 큰 놈들 같다.
왜 맞고 컸는지 니들은 모지만, 니들 에미는 알 거다.
니놈들이 맞고 나면 아까징끼는 옆집 아저씨가 발라줏제?
그기 혈육의 정이란 걸 니들이 알기나 하냐?
어이 안 하사, 니놈은 닭벼슬보다 못한 완장으로 군림했지,
여기 148명 중에서 일대 일로 붙었을 때 니한테 질 놈이 어데 있노?
최 하사~!! 너야말로 군대 혜택으로 사람위에 군림해보는 놈 같다.
넌 제대해봐야 밑바닥이다.
우짜던지 말뚝 박아라. 내가 간절히 권한다.
이 하사……. 김 하사……. 시불락 시불락 …….
중대장 야이 개.새.끼야, 이 죤만아!!
보자보자하니 보.지를 쑥 내민다더니, 니놈이 여기서 희희낙락하고 있는 순간 니 계집은 다른 껀수로 희희낙락중인 걸 모르제?
내 보기에 니는 좇.질은 젬병이다.
꼴값한다고 좇.질도 부실한 놈이 누구한테 총질 가르친다꼬? 씨불락 씨불락……."

통상 유격체험이 끝나면 그동안 혹독하게 다룬 것에 대한 보상으로 교관과 조교에게 욕할 수 있는 시간을 부여하면, 훈련병들은 천부당만부당이라며 거절하고 그 답례로 풀어주는 게 관례였다.
그날 나는 보장받은 오 분을 다 채우지 못했다.
얼굴이 벌게진 중대장의 지시로 주둥이가 틀어막힌 채로 끌려나와서 두드려 맞았다.
동료들은 유격장서 막사까지 오리걸음으로 왔고 나는 기어서 오게 되었다.
(to be continued)

written by ==='허허'===
(이 글의 저작권은 '허허' 님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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